Music alone

2011. 5. 30. 13:42Text Transform

피터 키비 지음.

 

순수 기악 음악(키비는 music alone이라 칭함)에 대한 여러가지 질문을 저자 특유의 말빨로 설명하고 풀어보는 책이다. 리스너가 음악에 반응하는 과정, 지각하는 형태, 음악은 어떤 식으로 감동을 주는가에 대한 전통적 주제를 풀어 보기도 하고, 음악의 심오함에 대해 살펴보기도 한다. 저자의 문장이 워낙 여러 개의 복문장도 많고 문장을 꼬는 것(부정의 부정, 서술의 부정 등등)이 만연해서 아주 쉬운 책은 아니지만 약간의 음악지식과 철학지식을 가진 독자라면 흥미롭게 볼만한 책이다.

 

사실, 철학이라는게 일반인들에게는 어렵고 또 이해하기 어려운 것인 이유는 그것이 상당히 관념적이고 인간이 당연하게 느끼는 것들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고 인간이 사고하는 과정과 느끼는 감정을 다시 인지하고 의식하여 그에 대한 성찰을 표현하기 때문이 아닐까. 각각의 사고 과정과 행동의 패턴을 인식하고 이를 일반화하는 과정들에 흥미를 느끼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미학은 대상이 예술작품이고 음악 미학은 음악이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소분류로 들어가겠지만 연구방식과 사유의 과정은 철학의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진 못할 것이다.

 

읽다보면 이 돈도 안되고 딱 떨어지는 답도 안나오는 주제를 왜 고민해야 하는 질문도 던지게 되지만 거창하게는 인간, 좁게는 나 자신의 사고와 인지 과정을 대상으로 나 자신에 대해 보다 잘 알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특히, 음악 애호가인 나로서는 인간은 음악을 왜 듣고, 어떤 영향을 받고, 왜 감동을 받는가 등에 대한 고민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회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저자의 주장을 보면 확실히 '재현성'보다는 음악 그 자체의 법칙과 구성, 구조 등에 천착하여 음악의 즐거움을 찾으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음악 용어와 이론을 이용하여 음악의 기술을 통해 음악을 이해하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특별한 이론과 지식이 없는 청자의 경우도 음악 그 자체에 대해 느끼고 즐긴다는 점을 피력한다. 굳이 대위법과 밀착진행 등의 용어를 모를지라도 주제의 반복과 선율의 아름다움을 캣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러지 않는가. 저자는 음악은 생각없는 자극만도 아니고 의미를 부여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재현성과 음악 그 자체의 음악적 구조.....때로는 음악이 어떤 무엇을 표현하고 재현하려는 목적을 가질 수 있다. 제목이 존재하거나 나아가 가사가 존재하면 더욱 원작자의 메시지는 명확해진다. 제목이나 가사없는 음악에서 우리가 음악을 통해 얻는 감정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전통적인 정서론자와 인지론자의 주장을 익히 알고 있다면 그리고 저자 키비의 음악의 순수성에 주목하는 성향을 이해한다면 키비는 정서론자보다 인지론자의 주장에 근접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음악이 청자를 슬프게 하는게 아니라 청자가 음악 속에 표현된 슬픔의 정서를 인지한다는 것이다.

 

음악이 우리를 정말로 슬프게하면 우리는 음악을 감동적이라 말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다시 찾아들으며 선호하는 예술로 보기 어렵지 않았을까. 슬픔의 정서를 음악 속에서 음악적 기호와 이론 그리고 구조 속에 내재화시켰기에 우리는 음악에서 그 법칙과 표현성을 인지했을 때 (예술로써)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더 나아가서는 자신의 과거의 경험까지 떠올리며 상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상상은 이미지적 공간적 상상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경험적으로 체화되고 개인의 내면 한 구석에 깊이 자리잡아 있던 감정을 밖으로 꺼내어 듣고 있는 음악이 마려한 프레임에 장착하고 그 둘이 완전한 합체를 이루었을 때를 말하고, 이 때 극도의 쾌감을 느끼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물론 이런 과정이 발전될수록 재현성의 특질과 가까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청자가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이상 이는 재현성보다는 음악 자체를 즐긴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과정을 지나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하고 이를 재현하고자 한다면 재현성의 측면으로 넘어갈 수 있지만, 그 표현의 방식과 단어 및 구체적으로 서술하는 것들에 따라 그것이 정말 재현성을 중시하며 음악을 감상한 것인지 음악 자체를 감상한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다양한 감정과 정서를 느끼게 되고 이것은 인간의 감정 DB에 쌓이게 된다. 때로는 이 감정과 정서는 밖으로 표현이 되기도 하지만 억압이 되고 마음 속에서 때로는 외톨이처럼 때로는 복수를 꿈꾸는 화신처럼 존재하게 된다. 이를 때로는 달래주고 때로는 바깥 세상 구경도 시켜주는 존재.....그것이 바로 음악이 아니겠는가. 예능의 가치는 본능을 대변함으로써 우리의 욕망을 사회화하지만 예술의 가치는 우리의 인생사를 대변함으로써 인간을 사회화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고상함이 무게를 갖지 못하면 한 개인이 스노브로 낙인 찍히듯이 예술의 중요성 그리고 예술음악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생각하며 이 책의 감상평을 마친다.

'Text Transform'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엘리건트 유니버스  (0) 2011.08.19
20세기 문화 지형도  (0) 2011.06.06
음악 미학  (0) 2011.05.21
칸딘스키와 클레의 추상미술  (0) 2011.05.14
당신의 모든 순간  (0) 2011.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