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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시즌 1

?....! 2011. 7. 18. 21:55

스파르타쿠스와 1,2편 같이 동시에 병렬로 보다가 로마만 쭉 이어가게 됐다. 스파르타쿠스는 시원한 청량음료같고 로마는 블랙커피를 마시다가 간간히 맛있는 디저트를 먹는 느낌이랄까....로마는 보다 사실적인 인물묘사와 잔잔하지만 서사면에서 높은 완성도를 보이는 것 같다. 다양한 캐릭터가 나오지만 시즌 1에서는 단연 풀로가 마음에 든다. 강인한 육체와 폭발적인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면에는 상사에 대한 충정과 자기가 몸 담았던 군단에 대한 강한 로열티를 가진 인물이다. 때로는 한 여인에게 순정을 보이기도 하고 그것때문에 고통받는 순정파 청년이기도 하다. 또한, 직속 상사의 변심에 따끔한 충고도 마다하지 않는 정말 수하로 삼고 싶은 인물로 묘사된다.

 

아래 캡처한 장면은 풀로가 퇴역 후 일자리가 없어 청부살인을 하다 잡혀 일종의 공개 처형 형식으로 검투사(망나니?)와의 대결로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의 장면이다. 풀로는 자포자기 상태로 검투사들이 빨리 자신을 죽이기를 요구하지만 검투사들은 13군단에 대한 비난을 하기 시작한다. 자포자기하고 죽음을 기다리던 풀로는 갑자기 이를 참지 못하고 13군단을 비장하게 외치며 검투사들을 처치해나간다. 무수히 많은 적들을 물리치지만 마지막 끝판왕이 나올 때 쯤에는 풀로도 많이 지쳐 마지막 한 방을 맞고 죽을 시간이 다가오게 된다.

 

이 때! 풀로를 관중석에서 계속 안쓰럽게 지켜보던 옛 직속 상사 루시우스 보레누스는 슬픔과 만감을 참지 못하고 검투장 안으로 뛰어가며 13을 외치며 끝판왕으로 나온 검투사를 물리쳐주고 옛 부하를 부축하며 걸어간다.

 

 

 

오랜만에 미드보다가 눈물 꽤 많이 흘린 것 같다. 아니 거의 처음인 것 같다. 자기가 몸담던 조직에 대한 강한 충성.....무엇이 그를 그렇게 분노하게 하였을까?....이미 죽기로 결정하기로 한 상태에서 자신이 몸 담았던 조직에 대한 타인의 비난과 조소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풀로는 자신의 믿음을 쉽게 저버리지 않고 충직하게 초지일관하는 인물이기에 자신의 조직과 자신의 신념이 모욕당하는 것을 참기 힘들었던 것일까. 설령 퇴역 후 청부살인을 한 댓가로 받는 자신의 죽음은 쉽게 인정하고 수긍하지만, 자신이 인생을 살아가며 믿었던 가치와 조직에 대한 애정, 추억, 믿음, 그리고 자신의 인생 자체였던 군단만은 모욕당하지 않고 세상에 남기고 알리며 죽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나는 왜 또 이런 장면에 뜨거운 눈물을 쉼없이 흘렸을까......설사 세뇌된 논리와 가치일지라도 변함없이 믿음을 지키며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분노할 줄 아는 순진하도록 착한 한 청년의 행동에 감동받은 것일까. 풀로의 행동뿐 아니라 보레누스의 연기 역시 매우 감동적이다. 사실 내가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정선을 고양시킨 까닭은 보레누스의 동참이 크게 작용했다.

 

이미 보레누스는 변심을 한 번 한 상태에서,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옛 부하가 모욕당하는 것을 무시했었지만 바로 자기 눈 앞에서 자신의 옛 부하가 죽어가며서까지 (예전에 같이 소속했던) "13군단"을 부르짖는 것을 보고 그 짧은 시간동안 만감이 교차하게 된다. 그도 결국 참지 못하고 13을 비장하게 외치며 검투장 안으로 뛰어들어가 옛 부하를 구해낸다. 일종의 (사리사욕)과 (충정,믿음,우정)의 전쟁에서 후자가 승리한 듯한 기분을 갖게 된다. 그건 우리가 갈망하지만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벌써 아련해지는 상황과 가치들이 아닌가.......

 

물론 조직에 대한 충성이라는 것을 허상으로 볼 수도 있고, 이런 장면들은 기득권들이 만든 노예들에 대한 인셉션이자 시뮬라크르일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 논리와 가치의 배경을 떠나 죽음 앞에서도 이상적 가치를 추구하며 소신을 지키는 한 인간의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답다. 현실의 그 무엇을 포기하고 부정하면서까지 '있어야 되는 것', '지키고 싶은 것', '있어야만 하는 것'을 추구하고 갈구하는 인간의 모습은 비장미 미학의 극치를 보여준다. 정신가치만을 강조하는 세태가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형이상학적인 정신의 가치도 때로는 매우 감동을 줄 수 있다.

 

한편, 대한민국 조직의 현실을 충분히 깨달은 상태에서 풀로와 보레누스의 외침은 더욱더 내 마음을 요동치게 하고 감동시킨다. 현실에 존재하지는 않으나 존재해야야 할 그 가치의 부재에 대한 분노를 표출함과 동시에 그 가치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나도 풀로와 보레누스의 외침을 따라해본다.